5개월 간 종이신문을 보았다. 인생이 바뀌었을까?
저는 작년 11월부터 신문을 구독해서 보고 있습니다.
매체는 평소 즐겨보던 ‘한국일보’로요.
아니 요즘 세상에 신문 구독이라니!
네 맞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죠.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7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종이 신문의 구독률은 9.9%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수치이니 신문을 신규 구독한 저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페이크 뉴스로 인한 문제와 SNS 사용의 피로감이 연일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약 5개월 간 매일 신문을 읽었던 제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름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1. 나는 왜 신문을 구독했나.
저는 과거에 편집기자로 일했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신문을 구독하지는 않았지만 신문을 매일 보던 사람이었죠.
기자로 근무할 당시 하루에 읽는 기사 수가 엄청났습니다.
그게 제 일이었으니까요.
어떤 이슈가 있는지 알아야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여 적합한 위치에 배열하고, 제목을 고치고, 수정하고, 노출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당시에도 주로 디지털로 뉴스를 봤지만, 신문도 조중동한경 등 메이저 언론의 헤드라인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진영 간 입장 차이를 알기 위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사설은 늘 챙겨보았고요.
그러다 보니 깊게는 잘 모르지만 세상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반인보다는 많이 알았습니다.(제가 똑똑한 게 아니라 업무적으로 그래야만 했으니까요)
하지만 언론사를 나오고부터는 일상이던 뉴스가 일상이 아니게 되더라고요.
(관련글 : 뉴스의 눈높이)
저는 점점 신문과 방송은 물론 네이버 뉴스조차 잘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페친들이 전달해주는 뉴스만 간간히 보았죠.
그래서 ‘아 이렇게는 안 되겠다, 뭔가 너무 뒤처지는 것 같다’는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마침 강상중씨가 조선일보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보니 이런 대목이 있더라고요.
“매일 신문을 읽어요. 신문 읽기는 피부 호흡, 신간 일기는 폐호흡, 고전 읽기는 복식 호흡입니다. 페이퍼의 활자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흡수하게 만들어요. TV나 인터넷에서 흘러가는 플로우(flow)와는 다르죠. 플로우와 스톡이 동시에 있어야 균형 잡힌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 중앙지와 지방지 하나를 읽고 긴 텀으로 인문 고전을 읽어요. 그 사이 월간지 하나 정도를 중간 지식으로 받아보고요.”
무릎을 탁 쳤죠. 그래 나도 신문을 읽어야겠어.
그렇게 해서 신문을 구독하게 되었습니다.
2. 신문 1년 구독료는 얼마일까?
한국일보 기준으로 1달 구독료는 15,000원입니다.
1년 구독을 하면 3개월치 분의 구독료를 받지 않더군요.
그러니까 1년 구독료는 15,000(원) X 9(개월) = 135,000원입니다.
편의점 등에서 일간지를 구입하게 되면 한 부에 800원인데요.
일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여섯 번 신문이 오니까 한 달에 평균 25일 정도 신문이 배달된다고 볼 수 있겠죠?
800(원) X 25(일) = 20,000원이 산출되는데요.
따라서 1달 구독료가 매일 신문을 사서 보는 것보다 5,000원 정도 저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웬만한 책들은 죄다 15,000원 정도 하는데 책 한 권과 신문 한 달치 비용이 동일한 것은 조금 아이러니한 느낌도 들긴 하네요.
(어디에서 권유받은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한국일보 구독 페이지에서 정기 구독을 신청했는데, 이런 경우가 무척 드물었는지, 전화하신 분이 신기하다는 뉘앙스로 연락을 주셔서 저는 그게 또 신기하였습니다 ㅎㅎ)
3. 신문의 좋은 점
1)여러, 좋은, 정보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신문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습니다.일간신문이 등장한 것은 1650년 경이었고, 대중신문의 효시로는 1833년 창간한 ‘선’을 들 수 있죠. 선은 한 부에 1센트를 받고 팔았기 때문에 ‘페니 신문’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185년이라는 기간 동안 신문의 레이아웃은 더 정교화되었고, 기사작성법이나 저널리즘에 대한 교육도 전문화되었습니다. 덕분에 정보의 효율적 습득이라는 측면에서 신문만큼 뛰어난 레이아웃을 가진 도구는 드물죠. 정치, 경제, 사회, 세계, IT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한눈에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요. 아무래도 SNS에서는 자기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정보를 소비하는 경향이 강한데, 신문을 읽게 되니까 정보의 불균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2)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세상사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보통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신경 쓰며 살게 될 텐데요. 저도 그랬고요. 그러다 보면 세상의 트렌드가 무엇인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나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게 될 가능성이 많잖아요? 사실 그런 정보 몰라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지만요. 그럼에도 신문을 보면 여러 가지 이슈들에 대해 알게 되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리나 동기 등에 대해 알게 되니까 ‘아 이 사람은 이런 이유로 이런 주장을 하는구나’, ‘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게 되죠. 그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지구촌의 일원이라고 까지 한다면 너무 거대해져 버리고…적어도 대한민국 구성원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그런 느낌적 느낌은 줍니다.
3)시간을 많이 빼앗기지 않는다.
이전에 페이스북을 통해 정보를 습득했을 때는… 그러니까 하루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페이스북에 할애해야만 했습니다. 아니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페이스북에 빨려 들어가 버리게 되었죠. 뭐 페이스북이 심리학자들을 채용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요. 그래서 많은 기사를 읽을 수 있었지만 이게 정확한 것은 맞는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은 아닌지, 그리고 살짝 편향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곤 하였습니다. 주로 비슷한 성향의 분들을 페친으로 두다 보니 그들이 올린 기사도 아무래도 제 취향을 타는 내용이 많았고요. 하지만 신문을 보게 되면서 페이스북을 하는 시간이 많이 줄게 되었고,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소식을 듣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한번 정제된 뉴스를 다음 날 받아볼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한국일보는 중도적 성향을 띄는 매체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정보를 볼 수 있었고요. 하루에 신문을 보는 시간은 대략 30분에서 1시간 정도로 그 이상 뉴스를 보는데 시간을 빼앗기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정보습득은 신문 보는 것으로 충분하니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시간도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로 대폭 줄어들게 되었고요.
4. 신문의 불편한 점
여러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그럼에도 많이 불편합니다.
1)가독성
가독성은 여러가지 의미로 풀어낼 수 있겠지만, 문자를 얼마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느냐는 의미로 본다면, 신문은 가독성이 정말 나쁩니다. 우선 크기가 크니까 들고 돌아다니면서 보기 어렵고, 글씨도 작죠.
2)부담감
디지털은 전체 기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잖아요? 스크롤을 내리면서 보면 되는데, 신문은 일단 전체 본문 내용이 한눈에 보이고…텍스트의 양이 많다는 걸 아니까 일단 읽기 전에 심호흡 한 번 하고 읽게 됩니다. 뭔가 부담스럽죠. 이걸 다 읽어야 하나? 물론 다 읽지 않아요. 대부분 제목하고 리드문 정도면 스윽 훑어보고 갑니다. 그래도 디지털에선 내가 궁금해 하는 기사 하나만 달랑 보고 가면 되는데 신문은 페이지에 있는 다른 기사들까지 끝까지 다 읽어야 될 거 같은 그런 부담감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안 읽어도 되고 실제도 다 보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뭔가 다 읽어야 될 거 같은 그런 부담감이 있더라고요.
3)신문이 아니죠. 구문.
요즘은 디지털로 실시간으로 기사가 나오니까 신문을 읽고 있으면 이미 과거의 사건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죠. 물론 하루 차이로 뭔가 큰 일이 터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업계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기에는 신문보다 디지털 뉴스가 더 빠르고 좋습니다. 그래서 기자나 얼리어답터 분들에게는 디지털 뉴스나 SNS에서 친구들이 공유해주는 내용이 신문에 비해 더 빠르고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5. 신문의 미래
1년을 구독하였지만, 구독 기한이 끝났을 때 다시 구독할 거 같진 않습니다.
잉? 아니 글쓴이 양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요!!
실컷 좋은 이야기 해 놓고는…
그러니까 ‘자기수양’이라거나 ‘정보습득’ 이라는 측면에서 신문은 분명 큰 도움을 줍니다. 시간도 아낄 수 있고요.
그렇지만 디지털로 뉴스를 보는 게 훨씬 편하고, 공짜에, 심리적 부담감도 없으니까요…
뉴스는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언론도 마찬가지겠죠.
다만 종이 신문이라는 형태는 점점 사라져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지털에 비해 많은 부분 불편한 게 사실이니까요.
결국 답은 디지털이다!
라는 이야기가 언론계에서 무척 오랫동안 떠돌았지만…
구호로서의 디지털 퍼스트가 대부분이고 여전히 새로운 대안적 방안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ㅠㅠ
대부분의 독자들이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에서 뉴스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유료화 모델은 찾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아웃스탠딩정도랄까요?
대신 언론사들은 포털에게 약간의 전재료를 받고 부가적으로 네이티브 애드 등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아니면 교육사업이나 부동산, 제휴 등 다른 사업을 통해 부가수익을 내고 있죠.
한편, 최근 미국이나 영국, 일본, 호주 등 부유한 국가에서는 온라인 형식의 구독 모델로의 전환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원칙적으로 신문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나 디지털 지불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라는 게 그들의 주장인데…
하지만 구독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쟁력이 있는 기사를 제공해야만 하죠.
그렇지 않다면 굳이 공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는 마당에 독자들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구독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영국의 더타임스는 과거 유료화를 도입한 이후 불과 몇 주만에 온라인 독자의 90%를 잃었습니다. 썬 역시 2013년 유료화 이후 독자의 60%를 잃었던 과거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일부 유료화 모델로 전환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의 모델이 그러하죠.
그들은 기본적인 기사는 무료로 제공하고 고급 기사는 돈을 받고 판매하는 프리미움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는 한정된 특정 타켓만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지를 운영하죠.
게임이나 IT쪽은 그런 사례가 꽤 많으니까요.
다만 이러한 방법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콘텐츠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팔고 있는 퍼블리의 경우 일부 유료화 방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공짜로 콘텐츠를 봤던 사람이 유료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자체 측정 결과를 그 이유로 들었죠.
퍼블리는 현재 전 콘텐츠를 유료로 팔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멤버십을 도입하여 개별 콘텐츠 비용을 내지 않고 정기구독을 하면 전체 콘텐츠를 무제한 읽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였죠.
물론 퍼블리는 뉴스매체…그중에서도 매일 새로운 소식을 전해야 하는 일간신문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이들의 전략과 언론사의 전략이 일치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튼 시대적 변화에 따라 앞으로 종이신문은 점차 사라져 갈 것이고, 디지털이 미래인 것은 맞는데, 디지털로 돈을 벌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죠.
이러한 고민은 생각보다 무척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답은 없고, 새로운 대안이 나올 때까지 언론사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남아있는 현실입니다.
6. 그래서? 삶이 바뀌었나?
사실 이 글의 제목을 저렇게 단 이유는 최근 티타임즈에서 보았던 ‘뉴욕타임스 간판 IT기자가 두 달 종이신문만 봤더니’이라는 기사때문입니다.
기사내용을 이렇습니다.
뉴욕타임스의 파하드 만주라는 IT기자가 두 달 간 뉴스앱과 SNS를 끊고 종이신문만 읽었는데, 이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어느 부분은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어느 부분은 조금 오버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주는 인생이 바뀌었는데, 그래서 저는 어땠을까요?
만주와는 다르게 인생이 바뀌었다고 까지 말하기는 어렵네요.
앞서 밝혔듯 1년 구독이 끝나면 다시 신문을 구독할 거 같진 않고요.
다만 페이스북 사용시간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페이스북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았겼으니까요.
그 시간에 그림 한 장 더 그리고, 아이랑 더 놀아줄 수 있게 되어서 그런 점은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SNS가 인생의 낭비라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후속편 : 1년간 종이신문을 보았다.